[바코 인사이드] ‘아시아 쿼터 제도’의 의미, 그리고 엉뚱한 상상

손동환 기자 / 기사승인 : 2020-10-04 23: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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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 매거진 9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독 링크)
 

Intro

KBL은 지난 5월 27일 하나의 보도자료를 보냈다. KBL 센터에서 제25기 제3차 임시총회 및 제7차 이사회를 개최했다는 자료.
KBL은 이날 이사회에서 부산 kt 농구단 구단주 변경 및 KBL 이사 보선(서울 삼성 농구단 단장 변경) 등을 논의했다.
부산 kt 농구단 구단주는 황창규 회장에서 구현모 대표이사로, 서울 삼성 농구단 단장은 이진원 본부장에서 김재산 BE 전문위원으로 각각 변경됐다. 여기까지는 소위 ‘복붙(복사 해서 붙여넣기)’으로만 처리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보도자료 말미에 직접 취재해야 할 내용이 나왔다. ‘아시아 쿼터 제도’였다. KBL은 ‘아시아 쿼터 제도’를 일본(B-리그)을 대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국내 프로 농구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시장 확대, 선수 육성 및 마케팅 활성화를 위한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일본을 시작으로 하되, 중국-필리핀 리그와도 교류 활성화를 계획하고 있다.
선수 영입 기준은 이렇다. 원하는 구단은 일본 선수(귀화, 이중국적, 혼혈선수 제외)를 대상으로 자율 영입할 수 있다. 1명만 보유할 수 있다. 해당 일본 선수는 국내 선수 기준으로 출전하며, 샐러리캡 및 선수 정원에 포함된다. 아울러, 국내 선수의 일본 B-리그 진출 또한 가능하다.
KBL이 ‘아시아 쿼터 제도’를 발표된 이후, 일본 선수의 KBL 진출과 한국 선수의 B-리그 진출이 실현됐다. 그러면서 ‘아시아 쿼터 제도’가 더욱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이에 관한 반응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일본 선수가 KBL에서 어떤 결과를 냈는지, 한국 선수가 B리그에서 어떤 경기력을 남겼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 이번 기사에서 ‘아시아 쿼터 제도’ 를 다루려고 하는 이유. 여기에 기자의 엉뚱한 상상을 더하려고 한다.

나카무라 타이치, 원주로 입성하다

원주 DB는 지난 6월 15일 나카무라 타이치와 계약 기간 1년에 5,000만 원의 조건으로 계약했다고 밝혔다. 일본 선수를 최초로 영입한 KBL 구단이 됐다.
나카무라 타이치는 1997년생의 어린 선수. 하지만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일본 남자농구 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가능성을 보인 유망주다. 2019~2020 시즌 B리그 교토 한나리즈의 선수로 41경기에 출전해 평균 6.3점 2.7어시스트 2.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3점슛 성공률 39.4%로 준수한 슈팅 능력을 보여줬다.
이상범 감독과도 인연을 가지고 있다. 이상범 감독이 일본에서 인스트럭터로 활동했을때, 타이치는 당시 학생 선수였다. 이상범 감독의 가르침을 받았다. 2019년에도 DB에서 연습을 해본 적 있다.
그래서 “이상범 감독님 밑에서 농구하는 건 내 꿈이었다. 내 가능성을 넓혀줄 수 있는 스승님이고, 그런 스승님 밑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하겠다”며 입단 소감을 밝힌 바있다.
타이치는 DB에서 한국 농구를 접하고 있다. 기회도 생겼다. 김태술과 허웅, 맹상훈 등 기존 가드진이 작은 부상을 안고 있고, 김현호가 아킬레스건 파열로 시즌 파열됐기 때문이다. 타이치는 연습 경기에 많이 투입되고 있고, 두경민-김영훈 등과 함께 앞선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연습 경기 기간 중 “팀 분위기가 매우 좋다. 형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두)경민이 형과 (김)종규형 등 대표팀 경험이 많은 형들 덕분에, 내가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일본과 KBL 그리고 DB의 스타일이 다르다. 내가 녹아들어야, 출전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며 ‘기대’와 ‘과제’를 동시에 언급했다. 그렇게 원주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시작된 아시아 쿼터 제도, KBL의 확고한 의지

나카무라 타이치. ‘아시아 쿼터 제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선수를 수입한 최초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처음은 낯설기 때문에, 우려하는 시선이 있는 건 당연하다.
특히, KBL로 선수를 보내야 하는 대학 혹은 고교 지도자들이 그랬다. 제자 한 명이라도더 취업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우려는 더욱 클 수 있었다.
한 대학 감독은 “조금은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했어요”라고 말을 꺼냈다. 그리고 “’코로나 19’로 학교 상황이 가뜩이나 좋지 않은데, 학생 선수들의 취업 입지가 줄어든 거잖아요” 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대학 지도자는 “아시아 쿼터 제도로 수출을 많이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수입이 수출보다 훨씬 많을 거에요. 국내 선수가 KBL로 진출하는 게 이전보다 위축될 거에요”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나카무라 타이치’의 영입 사례를 그 증거로 꼽았다.
하지만 KBL 관계자가 언급한 ‘아시아 쿼터 제도’의 의미는 학생 선수를 지도하는 이들의 생각과 전혀 달랐다. 아마추어 지도자들의 생각을 알고 있지만, 이를 ‘오해’라고 여겼다.
KBL 관계자는 “한국 농구를 국내로 한정해서는 이슈 생성과 비즈니스 전개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본과 필리핀, 대만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와 활발하게 교류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무엇보다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 힘든 이들에게 취업의 폭을 넓혀주고 싶었어요. 그게 아시아 쿼터의 진의죠. 시작점을 일본으로 잡았을 뿐이에 요”라며 아시아 쿼터 제도의 진의를 설명했다.
일본과 필리핀, 대만과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의 농구는 한국 농구와 대등한 수준을 지녔거나 한국 농구보다 아래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KBL이 아시아 국가와 활발한 교류를 한다면, 한국 농구 선수들이 더 넓은 범위로 알려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KBL이 아시아 농구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위에 언급된 나라들과 만족스러운 교류를 할 수 있다면, 중국과 중동 국가로도 범위를 넓힐 수 있다. 그렇게 되면, KBL의 규모는 자연스럽게 커질 수 있다.
아직 결과로 드러난 건 없다. 그래서 논란이 있다. 진의가 실천된 사례도 미미하다. 그래서 의견이 갈린다. 설령, 진의를 열심히 실천한다고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농구보다 먼저 시행된 야구와 축구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게 ‘아시아 쿼터 제도’가 우려의 시선을 받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KBL의 생각은 확고하다. 한국 농구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미래를 크게 내다보고 싶었다. ‘아시아 쿼터 제도’를 필수 불가결한 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쿼터 제도’의 또 다른 이유


KBL이 1997년 창설 후 매년 고민한 문제가 있다. ‘외국 선수 제도’. KBL은 “외국 선수들의 화려하고 수준 높은 플레이를 팬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는 목적으로 ‘외국 선수 제도’를 신설했다.
외국 선수가 국내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외국 선수 제도는 변화에 변화를 겪었다. 제도가 복잡해지면서, 팬들의 외면을 받았다. KBL 스스로도 혼란을 겪었다.
KBL이 혼란을 겪으니, 팬들도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KBL에 충성하는 팬들이 점점 줄어든 이유. 자유계약 시절에는 뒷돈 문제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슈를 크게 만들수 있는 외국선수가 KBL에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또, 필요 이상의 관리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야, 외국 선수들의 경기력이 유지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유지 비용이 적지 않았고, 이로 인해 고민하는 구단들이 많았다.
그래서 외국 선수 제도를 대체 혹은 보완할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이 언급됐다. KBL을 경험했던 한 관계자는 예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외국 선수의 경기력 유지를 위해서는 통제(?)가 어느 정도 필요해요. 그런데 쉽지 않아요”라는 말을 꺼냈고, “아시아 쿼터 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어요. 외국 선수를 대체할 정도의 이슈를 만들 수 있고, KBL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는 선수들이 ‘기회’라는 단어도 생각할 수 있죠”라고 전했다.
관계자의 이야기를 듣고, 예전의 사례를 돌아보게 됐다. KBL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이 아시아에서 활약한 사례 말이다.
가장 크게 떠오른 이는 안양 KGC인삼공사와 창원 LG에서 활약했던 신제록이었다. 신제 록은 2011년 이와테 빅불스에서 활약한 바 있다. 일본을 경험한 최초의 한국 선수라고 볼 수 있다. 은퇴 후 2014년부터 요식업에 뛰어 들었다. 일본과 관련된 사업. 그렇게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신제록은 일본에서의 생활로 많은 걸 얻었다. 우선 ‘일본어’라는 무기가 생겼다. 무기를 갈고 닦아,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 농구를 벗어나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됐다.
당시에는 아무에게도 주목 받지 못했다. 하지만 ‘아시아 쿼터 제도’가 본격적인 시행되면서, ‘아시아 쿼터 제도’의 모범 사례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선수 인생’과 ‘교류’ 측면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만든 것.
김지완(전주 KCC)과 이관희(서울 삼성)도 한국 외의 나라를 경험한 바 있다. 비시즌에 필리핀 리그에서 활약한 적 있다. 이들의 사례를 잘 지켜보는 것도 ‘아시아 쿼터 제도’의 성공적인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다.

‘터리픽 12’, ‘아시아 쿼터 제도’의 좋은 참고 사례?


‘아시아 쿼터 제도가 활성화된다면?’
‘아시아 국가들이 농구로 활발한 교류를 할 수 있다면?’
모두 긍정적인 상상이다. 두 가지 상상 모두 한국 농구에 큰 경제적 효과를 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상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상상은 현실이 되어야 한다. 아시아 클럽 대회인 ‘터리픽 12’가 ‘KBL 아시아 쿼터 제도’에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터리픽 12’도 결국 농구 범위를 아시아로 넓히고, 이를 통해 큰 금전 효과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대회 관계자인 한기윤 팀장은 “현재 중계권료 수준은 미비해요. 하지만 ‘터리픽 12’라는 대회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대회로 성장을 한다면, 중계권료가 어느 정도로 산출될지 어려울 정도라고 생각해요”라며 기대했다.
‘터리픽 12’는 현재 마카오 관광청의 스폰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회를 찾는 팀이나 리그 관계자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경기 운영과 숙박, 식사와 미디어 부스 운영 등 대회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만족을 끌어내고 있다.
참가하는 팀들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농구 팬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관중들이 코트를 가득 메우고 있고, 텐센트를 통해 중국 전역으로 생중계되고 있다. 시청자 숫자 역시 어마어마하다.
‘터리픽 12’ 운영 조직이 ‘터리픽 12’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을 하는 이유다. 해당 대회를 아시아 리그로 확대하는 것 역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KBL이 성공적인 ‘아시아 쿼터 제도’를 꿈꾼다면, ‘터리픽 12’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명확하다. 교류 대상을 어느 방향으로 확대하느냐다. 일본 이후의 대상을 잘 선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나라와 교류할 때 더 큰 효과를 얻는지, 그리고 얼마나 실질적인 효과를 얻는지 생각해야 한다.
중국과 필리핀이 차후 교류 대상으로 꼽히는 이유다. 두 나라 모두 관람 스포츠로서의 농구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파급력 또한 크다. 대만도 다르지 않고, 베트남도 최근 농구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만과 베트남까지 교류 대상 후보군에 오른 이유다.
KBL은 매 시즌 타이틀 스폰서와 중계권료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KBL의 선택은 규모 자체를 넓히는 것이었다. ‘터리픽 12’를 참고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KBL이 ‘아시아 쿼터 제도’를 성공적인 방향으로 정착한다면, 중계권료와 관련해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타이틀 스폰서 규모 또한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구단 상품 판매와 관련해서도 현재 이상의 금전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사라진다는 전제 하에, 아시아 국가끼리 더 큰 교류 관계도 형성할 수 있다. 더 큰 관계가 형성된다면, ‘안정적인 금전 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 그게 KBL에서 노리는 ‘아시아 쿼터 제도’의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KBL에서 원했던 상황, 양재민의 일본 진출


6월 25일. KBL이 ‘아시아 쿼터 제도’를 도입한 후, 한 달 정도 지난 시기였다. 한 명의 국내 선수가 B리그 진출 소식을 전했다.
양재민이었다. 양재민은 B리그 신슈 브레이브스 워리어스와 계약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신슈는 시민 구단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팀. 2부 팀이었던 신슈는 2019~2020 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1부로 승격되는 기쁨을 누렸다. 시즌 종료 후 전력 강화를 위해 양재민을 영입했다.
양재민은 한국 농구 유망주로 꼽히는 선수. 청소년 대표팀을 경험했고, 유망주가 모인 연세대로 진학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농구 유학을 결심했고, NJCAA(전미전문대학체육협회) 산하인 네오쇼 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Neosho County Community College)로 진학했다. 영어와 농구 실력 모두 부족했기에, NCAA 산하 학교로 입학할 수 없었다.
2년 동안 소속 팀에서 에이스 역할을 해냈고, 2019~2020 시즌 종료 후 농구 명문인 조지타운 대학 등 NCAA 1,2부를 포함해 20~30개의 학교에서 러브 콜을 받았다. 양재민 에게 희망찬 앞날만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양재민의 발목을 잡았다. 진학과 관련된 스케쥴이 모두 8월 이후로 밀리면서 양재민은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
그가 선택한 곳은 바로 일본이었다. KBL이 ‘아시아 쿼터 제도’를 발표한 이후였기 때문에, 양재민의 선택은 더 큰 박수를 받았다. 특히, KBL에서 기뻐할 일이었다. KBL이 원했던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 (물론, 양재민은 한국 대학생 신분도 KBL 드래프트 지원자 신분도 아니었다)
양재민은 “사실 미국에서 계속 있고 싶었죠. 그렇지만 아시는 바와 같이 ‘코로나 19’로 인해 미국에 있을 수 없었어요. 어디든 가야 했죠. 호주와 KBL 그리고 일본 리그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일본을 선택했어요. 일단 계약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고, ‘NBA 서머 리그나 해외리그에 도전해도 된다’는 조건도 있었죠”라며 계약 배경을 설명했다.
양재민이 100% 원한 건 아니었다고 하지만, 어쨌든 양재민은 역사를 썼다. 일본이 B리그로 프로 리그를 통합한 이후, 처음으로 일본에 진출한 한국 선수가 됐다.(신제록이 뛴이와테 빅불스는 일본 BJ리그 소속이었다)
또한, 양재민과 함께 필리핀과 대만에서 촉망 받는 유망주들도 2020~2021 시즌 일본 B리그에서 활약할 예정이다. 두 선수는 “양재민과 맞대결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비췄다.
B리그는 차기 시즌 아시아 유망주 간의 맞대결로 이슈를 만들 수 있다. 한국 유망주가 포함된 상황. ‘선수 수출’로 어떤 효과를 얻을지도 기대할 수 있다. 양재민의 일본 진출은 KBL에 분명 긍정적인 소식이었다.

엉뚱한 상상 : 이지엔리엔이 한국에 온다면?

‘아시아 쿼터 제도’의 핵심은 ‘교류’다. 정확히 말하면, 아시아 선수가 KBL로 오고, 한국 선수가 KBL이 아닌 다른 아시아 리그로 진출하는 일이다.
기자는 ‘교류’라는 의미에 맞춰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가장 먼저 해본 생각은 ‘이지엔리엔이 한국에 온다면?’이었다.
이지엔리엔은 중국을 대표하는 선수다. 213cm의 키에 공격 범위가 넓은 장신 자원. 2007년 NBA 신인 드래프트 전체 6순위에 뽑힐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NBA에서도 가능성을 보여줬다. 페인트 존에서의 활약과 득점력으로 ‘이달의 신인왕’을 받은 적도 있다. 2007~2008 시즌 종료 후 뉴저지 네츠로 트레이드됐고, 뉴저지에서도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연이은 부상과 더딘 발전에 발목을 잡혔다. 2011년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중국으로 돌아온 이지엔리엔은 아시아에서 맹위를 떨쳤다. 2011 아시아선수권과 2015 아시아선수권에서 MVP를 차지한 것.
예전 같으면, 이지엔리엔을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KBL이 ‘아시아 쿼터 제도’ 의 범위를 중국까지 넓힌다면, 이지엔리엔이 KBL로 올 가능성은 ‘0’이 아닐 것이다. 특히, 장신 자원을 생각하는 구단이라면, 이지엔리엔의 KBL 입성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 또한, 아시아 선수가 국내 선수 샐러리캡에 포함되기 때문에, ‘엉뚱한 상상’ 정도는 해볼 수 있다.
물론, 이지엔리엔은 높은 몸값을 지닌 선수다. 그런 선수가 한국에 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발전 가능성 있는 중국 선수가 한국에 온다면, 이를 만류할 구단은 많지 않을 것이다.
꼭 이지엔리엔이 아니어도, 중국 선수부터 생각해본 이유가 있다. 중국은 한국과 가까운 곳이고, 중국만큼 아시아에서 파급력 있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KBL 규모 자체가 달라질 수 있는 일이다.
한국 선수가 중국에 진출하는 것도 상상해볼 일이다. 어떻게 보면, ‘제2의 한류’도 기대할수 있다. ‘제2의 한류’가 농구에서 나왔을 때, 한국 농구가 1990년대의 영광을 또 한 번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한국 농구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아쉬움’이라는 감정을 안았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농구의 변화를 꿈꾼 이유다. 이정대 총재도 마찬가지다. 변화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있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있다.
‘아시아 쿼터 제도’도 그 중 하나다. 이제 시작점에 섰고, 혼란을 많이 겪어야 한다. 실천의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정착된다면, 한국 농구 인기 상승의 기폭제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즐겁고 엉뚱한 상상들이 현실로 실현될 수도 있다. 기자는 그런 상상들이 현실로 다가오길 기대하고 있다.

사진 제공 = KBL

바스켓코리아 / 손동환 기자 sdh2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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