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경기의 지배자이자 리바운드의 지배자, 올루미데 오예데지 

김영훈 기자 / 기사승인 : 2020-06-12 15: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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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켓코리아 = 김영훈 기자] ‘리바운드를 지배하는 자가 경기를 제압한다.’


유명한 만화 슬램덩크에서 리바운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북산고 주장 채치수가 강백호에게 건넨 말이다.


농구의 흐름이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지만, 위의 격언은 여전히 통용되는 말이다. 경기 전 모든 감독들이 선수들에게 리바운드에 대해 강조할 뿐만 아니라 패배에 대한 이유를 찾으라면 가장 먼저 리바운드를 꼽는다. 그만큼 리바운드는 아직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 리바운드를 가장 잘 잡았던 선수는 누구였을까. 여러 이름들이 거론되겠지만, 리바운드에 있어서 올루미데 오예데지의 이름이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리바운드에 있어서 최고의 선수였던, 오예데지의 이야기를 되짚어보았다.


삼성과 오예데지의 첫 만남
나이지리아 태생의 오예데지는 농구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도전에 나섰던 그는 2000년 NBA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42순위로 시애틀 슈퍼소닉스(현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지명을 받으며 꿈의 무대에 입성했다.


그러나 오예데지에게 NBA의 벽은 높았다. 시애틀에서 두 시즌 합쳐 66경기를 뛴 것에 그쳤다. 그는 이듬해 올랜도 매직으로 팀을 옮겼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결국 유럽으로 떠나야 했다.


이후 여러 곳을 떠돌던 오예데지는 중국까지 가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KBL 관계자들의 눈에 띄게 됐다. 당시 KBL과 중국의 CBA는 한중 올스타전을 개최했다. 중국 대표로 참가한 오예데지는 19점 24리바운드를 기록, 맹활약을 펼쳤다.


그런 오예데지를 눈여겨본 팀이 있었다. 바로 서울 삼성. 서장훈의 골밑 파트너가 필요했던 삼성은 골밑 능력이 좋은 그를 택했다.


삼성은 동시에 대구 오리온스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던 네이트 존슨(그의 이야기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3월호 추억의 외인 참고)도 영입했다. 이로써 외곽은 존슨, 골밑은 오예데지라는 외국 선수 조합을 구성했다.


여기에 국내 선수로 서장훈, 이규섭, 강혁, 이정석, 이세범 등이 더해지면서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채 시즌에 들어가게 됐다.


두 번째 해에도 여전한 존재감
기대감이 가득했던 삼성은 정규시즌에서 이를 확실히 보여줬다. 폭발적인 모습은 아니었으나 꾸준히 승수를 쌓았다. 매 라운드 당 5승, 6승 정도를 추가하며 상위권을 유지했다.


잘나가던 삼성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2월. 오예데지가 발목 부상으로 빠졌다. 대체 선수로 쉘리 클락을 영입했으나 오예데지의 공백을 메우기는 힘들었고, 삼성은 그가 없는 기간 4승 5패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공동 선두였던 그들은 1위 자리를 모비스에게 내줬다.


이후 오예데지가 돌아왔지만, 선두 자리를 되찾지 못한 삼성은 결국 2위(32승 22패)에 자리했다. 1위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전 시즌 5위였던 것을 감안하면 성공적인 한 시즌이었다.


삼성의 도약에는 오예데지의 공이 매우 컸다. 13.2리바운드 1.3블록슛을 해내며 골밑 사수 일등공신이었다. 리바운드에 가려졌으나 평균 16.1점을 올린 공격도 수준급이었다.


오예데지의 활약으로 서장훈의 쓰임새도 달라졌다. 골밑에 오예데지가 있기에 서장훈은 외곽으로 나와서 플레이했고, 자신의 장기인 외곽슛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다. 서장훈은 해당 시즌 자신의 커리어 중 가장 많았던 경기당 3.7개의 3점슛을 시도했다.


물론, 이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현대에는 빅맨도 외곽슛 능력이 필수지만, 2000년대에는 센터에게 외곽슛이 금기시되었다. 때문에 ‘너무 겉도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그렇지만 서장훈은 38.5%의 3점슛 성공률로 이러한 혹평을 잠재웠다. 결국 오예데지와 서장훈의 조합은 성공이라는 결과를 남겼다.


오예데지는 농구 외적으로도 좋은 평가였다. 당시 백업 가드 역할을 소화했던 이세범 코치는 “오예데지가 있어 모든 선수들의 활약이 편해졌다. 코트에 누가 쓰러지면 항상 먼저 와서 일으켜주는 선수였다. 그만큼 국내 선수와 사이가 좋았다”며 오예데지를 떠올렸다.


그는 이어 “인상은 솔직히 무섭게 생겼으나 성격은 전혀 달랐다. 수다스러웠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선수들을 초대해 칠면조를 사서 파티도 했었다”며 오예데지와의 추억을 덧붙였다.


삼성에게 별을 안긴, 오예데지
성공적인 정규시즌을 마친 삼성의 시선은 플레이오프로 향했다. 먼저 4강에 오른 삼성에게 도전장을 내민 팀은 대구 오리온스. 김승현과 김병철이 버티고 있었던 오리온스는 원주 동부를 꺾고 4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삼성은 너무 강했다. 첫 경기부터 18점차 대승을 거둔 삼성은 이후 2경기를 내리 승리하며 순조롭게 챔프전에 올라섰다.


삼성의 결승 상대는 울산 모비스. 정규리그 1위이며 양동근과 크리스 윌리엄스가 버티고 있었던 팀이었다.


두 팀은 1차전부터 결승 답게 접전을 벌였다. 마지막에 웃은 팀은 서울 삼성이었다. 이규섭이 4쿼터에만 3점포 3방 포함 11점을 퍼부었고, 오예데지도 7개의 리바운드를 잡으며 거들었다. 내외곽의 조화가 더해진 삼성은 모비스를 꺾고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2차전도 접전은 마찬가지였다. 두 팀은 연장까지 가는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명승부를 선사했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삼성이었다. 오예데지가 22점 19리바운드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서장훈-이규섭-강혁-존슨이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며 107점이라는 무서운 공격력을 자랑했다.


적지에서 2승을 챙긴 삼성은 기세를 올렸다. 3차전 전반의 열세를 뒤집고, 후반 역전극을 선보였다. 파죽의 3연승이었다.


마지막 우승을 결정짓는 4차전도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됐다. 이번에도 승리는 삼성이었고, 결국 4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플레이오프까지 포함하면 7전 전승 우승. 역대 최초 플레이오프 전승 우승이었다.


챔프전 MVP는 강혁의 차지였다. 17.3점 6.5어시스트를 기록했기에 당연했다. 하지만 오예데지의 공도 매우 컸다. 평균 21.3점 16.8리바운드 3.0어시스트 1.8블록슛이라는 엽기적인 스탯을 선보이며 골밑을 지배했다.


당시 모비스에는 제이슨 클락이 있었으나 오예데지를 전혀 제어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30.5점 11.3리바운드 6.3어시스트라는 괴력을 선보인 윌리엄스의 활약도 빛이 바랬다.


우승, 그 이후
오예데지는 다음 시즌도 존슨과 함께 삼성에 잔류했다. 우승 멤버 대부분이 잔류한 삼성은 당연히 정상전력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2006년 겨울 열린 도하 아시안게임으로 인해 서장훈과 이규섭이 20경기 가까이 결장했고, 이세범의 이탈로 백업 자원도 얇아진 터라 이전보다 순위가 하락했다. 존슨의 활약도 이전 두 시즌에 비해서는 많이 약해졌다.


그럼에도 오예데지가 있기에 삼성은 중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득점은 줄었으나 리바운드는 여전했다. 12.9점 13.0리바운드로 삼성의 골밑을 든든히 지켜줬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오예데지는 시즌 후 리바운드 1위와 동시에 BEST5를 차지했다.


삼성은 준플레이오프에서 전 시즌 4강에서 만났던 오리온스를 상대했다. 그러나 지난 맞대결과 다르게 오리온스에는 피트 마이클이 존재했다. 득점 기계였던 피트 마이클을 막지 못했던 삼성은 1승 2패로 2006-2007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두 시즌 성공적인 활약을 보여줬던 오예데지는 계속 KBL에 남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자유계약에서 트라이아웃으로 외국 선수 제도가 바뀌면서 오예데지는 한국을 떠났다. 그는 이후 중국 등지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갔다.


오래도록 소식이 없었던 오예데지는 2010-2011 시즌 컴백을 알렸다. 트라이아웃 제도에서 다시 자유계약으로 회귀하면서 창원 LG는 서장훈의 골밑 파트너로 오예데지를 영입했다. 둘의 3년 만에 재회에 많은 관심이 모아졌다.


하지만 서장훈이 30대 중반, 오예데지가 30대로 접어든 상황. 때문에 둘의 시너지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또한, LG는 공격 자원이 필요했기에 오예데지는 적합한 자원이 아니었다. 결국 오예데지는 10경기 만에 퇴출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리바운드로 골밑을 지배했던 오예데지는 ‘퇴출’이라는 결말을 맞으며 KBL을 떠나야 했다.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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